New to Busy?

(소련이 기술한 한국전쟁) 18. 8월 21일부터 9월 14일까지, 악화된 북한군 전력상황

11 comments

wisdomandjustice
73
12 days ago2 min read

8월 3째주에 들어 북한군의 전력은 극도로 떨어졌다. 북한군은 마지막 공세를 시도했으나 이미 전황은 기울어가고 있었다.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먼저 당시 전투편성이다. 총 14개 사단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중 10개 사단을 제1선에 3개단은 예비로 1개사단은 평양에서 편성중에 있었다.

"보유한 14개 사단중에서 10개(제6, 제4, 제10, 제3, 제15, 제13, 제1, 제8, 제12, 제5) 보병사단과 제105전차사단이 제1선에서 활동하였고 3개사단은 예비로 운용되었다. 제7보병사단이 진주에, 제9보병사단이 서울에서 합첨 동쪽지역으로 이동했고, 제2 보병사단은 영동북동쪽에서 성주지역으로 이둉했다.

새로편성중인 제17기계화사단은 평양에 위치하였다. 새롭게 편성된 제16전차여단이 합천 동쪽 지역에 배치되어 있었다. 춘천과 철원지역에는 제18 및 제19보병여단이 배치되어 있었다. 춘천과 철원지역에는 제18 및 제19보병여단이 배치되어 있었고 남포와 원산에는 2개 해병여단이 편성되어 있었다.(p.72)"

한편, 그간의 공격작전 수행간 인민군의 피해는 심각했다. 더 이상 작전을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포병손실은 약 40%, 전차 및 자주포는 50% 이상이었다. 보병사단은 당시 평균 30-50% 정도의 편제 인원과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제1, 제3, 제4, 제6 및 제15보병사단은 상당한 인원손실을 보았다. 즉 제1, 제3 보병사단 예하연대에는 각 100-200명 정도의 전투인원이 남아 있었다. 제1보병사단에는 포와 박격포 63문밖에 없었고, 편제상 203문 중에서 제5사단에 141문, 제8사단에 85문, 제12 사단에 60문, 제15사단에 92문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쟁개시부터 8월 18일까지 병력은 보충되었으나 물자는 거의 보충받지 못했다.(p.72)"

북한군 공군의 전력도 형편없었다.

"인민군 공군이 보유한 가용 항공기는 폭격기 20대와 전투기 1대 총21대가 전부였다. 전투기 조종사가 6명이고 습격기 조종사는 17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 공군에 대항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인민군 고사포 부대에[는 37미리 및 85미리 고사포가 80문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전선에서도 후방에서도 주요시설조차 엄호할 수 없었다.(73)"

해군은 거의 모든 능력을 상실했다.

"인민군 해군은 당시 큰 피해를 입어 적 해군에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74)"

북한군은 8월 3째주이전에 거의 전력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 이후의 작전은 가능성 없는 상황이었다.



Posted from my blog with SteemPress : http://warandpeace.dothome.co.kr/2019/09/10/sovietview-koreanwar-18/

Sponsored ( Powered by dclick )
지소미아 종료했다고 우리 안보 걱정할 필요없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후 미국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의 반발은 우리 국내 소위 보수적 ...

Comments

Sort by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