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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감정들, 생각들 정리 - 디폴트(default)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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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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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자아를 따라간다는 것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고 나서야, 진정 마주할 수 있는 나의 자아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 인생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대화에서 내게 남은 조각들. 그저 ‘성공’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높은 지위, 좋은 필모그래피를 쌓을 수 있다는 것만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며 이제는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는 말에 그러한 경지에 닿기까지 그에게 필요했던 정신적 지지나 안정감이 쌓여 터진것이 아닌가 감히 짐작해 본다. 이러한 의견은 주의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케이스긴 하지만. 일은 하되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다 이러한 말은 더이상 헛된 바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자 소원이지 않을까. 사람답게 존중을 받고 내 노동의 가치가 폄하되지 않는것을 바랄 수 있는 사회는 주어질 수 있는 것일까.


2
 여러모로 다양한 모양의 집착을 갖고 있는데, 도저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사방에 존재한다. 상담 받았던 내용을 기억해보자면 사람을 만날땐 특징으로 A 부터 Z 까지가 있다면 그 중에 내가 좀더 맞는, 좀더 특별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내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한 사람에게는 나와 유난히 한 부분이 잘 맞았던 것이다. 상대방을 더욱 ‘특별히’ ‘소중히’ 생각하게 되는 동기와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해를 할 수 있게되고 그 집착성에 대하여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다. 아예 벗어나기란 쉽지 않지만 최소한 내 감정으로부터 떨어져 생각하는 계기는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3
 현재 디 그레이엄(외 두명) 저자의 <여자는 인질이다>와 위근우 저자의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를 개인적 공부의 의미로 해체하는 작업을 하고있는데, 나의 (별것 없는)공부법은 ‘데이팅 하는 것’(데리다) 이라는 담론과 아주 가깝다. 나한테 중요한 개념 하나를 골라서, 그와 관련 된 책 한권을 붙잡고 계속 본다. 어려울 것 없이 이해가 되지 않는 단어와 문장을 솎아내 찾아보고 (wordreference,사전,위키,구글 등을 이용) 눈에 개념이 익숙해질때 까지 번복해 읽는다. 내 자신을 케어하는 것과 타자의 인간성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선을 끊임없이 지켜내야 한다는 과제를 스스로 부여잡고 있기 때문에 잠시라도 공부를 놓을 수 없다. 악기 배우는 것과 똑같은 매일 훈련하는 것인 ‘공부’는 하루종일 연관지어 생각해야 다음날 겨우 소화가 되어 따라갈 수 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영역과 공부해야 할 영역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낀다.


4
 학생들과 ‘창의적인 글쓰기’에 대하여 종종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여기서도 적용되는 강남순 교수님의 강의 몇 내용으로 “배움이라는 것은 아무리 앞에서 누가 명 강의를 해도 질문 없이는 불가능하다. 모든 출발점은 나이고 나는 뭘 느낄 것인가 나는 여기 왜 왔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를 전달하려 애를 쓴다. 그래서인지 질문을 남기지 않는 추측 글, 그저 생각 정리 수준의 글 또는 책은 쉽게 흥미를 잃곤 하는데, 요새 딱 내 글이 그렇다.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지만 전심을 다해 쓰지 못하고 있기에...나의 글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또는 타인에게 어떻게 읽히는지를 생각해보면 답답할 뿐. 이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될까.


5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10분 아니 5분만 대화를 나누어 보아도 이 사람이 얼마나 성찰을 행하고 있는지,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차별적 언어와 행동들을 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아니면 이민경 저자의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처럼 나에겐 대답할 의무가 없음을 또는 이해해줘야 할 의무가 없음을, 아니 의지부터 없음을 알려줘야 할지(추천하는 책!) 너무나 무서운 것은 나 또한 의도성과 상관없이 똑같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의 인식론적 사각지대는 얼만큼, 얼마나 오래 타인을 고통스럽게 했을까를 생각하면 밤에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너무나 두렵고, 미안하다.


6
 다층적 이해라는 말은 지금의 내겐 인문학적 성찰과 맞닿아 있기에 활자를 더욱 집요하게 파고드는 수 밖에 없다. 그동안의 나를 반성하는 겸이라고 해두자. 나는 다층적인 이해를 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치열하게 나 자신과 싸우는데 (사실 이루어져야 할 실질적인 것은 사회운동이지만) 정작 ‘나’에 대한 이해는 남들에게 바랄 수 없게 되었다. 아예 기대를 안하고 시작하는 편이 나을 정도다. 애초부터 기대했다가 나중에 더 큰 실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7
그런 나도 가끔은 사람에게 기대를 한다. 감정이 싹트고 나면 기대를 하게 되고, 사랑을 하고 집착을 한다. 불완전한 존재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완전히 그 껍데기를 탈피하기란 쉽지 않은 일임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 안간힘을 쓴다. 결과는 연속된 패배에 의지를 상실한다 해도, 다시 일어나는게 사람이라지 않은가. 삶을 확장시켜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것들이 존재하는게 당연하고 나는 그것들과 싸워 이길 수 있다. 아… 싸우는게 힘들다면, 그냥 존버라도 하자. 이제 힘든것은 디폴트인 사회.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치는 건 사치라고 생각하면 조금 편해지려나. 쉬운 것 하나 없다는 말씀이 떠오른다.


Originally posted on Layla. Steem blog powered by ENGR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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