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작은생각] 그대는 국가를 아는가? - 필로소퍼, ‘어용지식인’ 유시민을 동정하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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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e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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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months agoSteemit7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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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웠습니다. 유시민을 ‘디스’했던 지난 글 <그대는 화폐를 아는가>가 몰고 온 예상밖의 큰 반응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것 때문에 며칠 동안 엄청난 두통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두통의 원인은 특이 체질 때문인데요. 학부 졸업 때 쓴 논문을 본 교수님의 첫 반응도 그랬습니다.

“참 특이하네... 너는 논문을 쓰랬더니 왜 에세이를 썼니?”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관련된 논의들을 비판적으로 조망해서 합리적 대안을 도출하는 것’이 사회과학 논문 본연의 의미라는 뜻이겠죠. 저 또한 그것을 모르지 않았으나 ‘현실을 분석하고 관련 논의를 살펴볼수록 절망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논문의 부제도 ‘...공포의 시대를 예감함’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세상에... 지금 돌이켜 봐도 정치학 논문 제목으로는 꽤나 도발적이었죠. 교수님의 애정 어린 지적에 대해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한 제 답변은 이것이었습니다. “논문과 에세이의 본질적 차이가...?”

입 밖에 내지 않은 덕분인지 학부 졸업 논문 따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당시 분위기 덕분인지 모르지만, 졸업은 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한 일은 제 예감이 실현되었다는 것.ㅜㅜ 졸업한 지 2년도 안 돼 IMF 경제위기가 닥친 거죠. 저는 그때까지 언론고시 3수를 하는 동안 최종면접에서만 9번 낙방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고, 마침내 모 신문사에 합격하여 출근 날짜만 기다리던 어느 겨울날, “경영 위기를 맞아 수습기자 임용을 무기 연기한다”는 전보를 받았으니까요.^^;;;

이후 우여곡절 끝에 얻은 기자라는 딱지를 광속으로 내던진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두통’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비판한다는, 말을 칼 삼아 휘둘러야 한다는 책임감의 무게 때문에 ‘꺼진 불도 다시 보고’, ‘돌다리를 두드리다 못해 닦아가며’ 기사를 쓰다 보니 가뜩이나 부족한 뇌 용량이 견디질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설이 길었죠? 죄송합니다. 어쨌거나... 이 글은 ‘디스’하는 글이 아니라 ‘동정’하는 글이니... 두통이 좀 수월할 거라 믿고 조심스레 글을 시작해 보렵니다.


들어가기 전에 잠깐, 재미있는 사실. 유시민을 디스하기 며칠 전 대철학자 데카르트를 ‘디스’한 글 be동사로 데카르트를 디스하다의 보팅 수는 9, 보상액수는 $0.09였다는... 데카르트, 스팀잇에서 의문의 대패!^^

국가란 무엇인가?

네, 그렇습니다. 유시민 작가가 쓴 베스트셀러 제목이기도 하죠. 우선 누구나 합의할 수 있는 정의에서 출발하겠습니다. 국가는 정치 공동체입니다. 일정한 영토 안에서 구성원(=국민)에게 공권력을 행사하는... 그런데 이런 정의... 뭐랄까, 틀린 말 같진 않은데 딱히 와 닿지가 않습니다. ‘으응~ 그게 국가야? 그래서 어쩌라고?’

그도 그럴 것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신호등의 의미를 가르친답시고 “도로에 설치하여, 적색ㆍ녹색ㆍ황색 및 녹색 화살 표시 따위의 점멸로 통행 차량이나 사람에게 정지ㆍ우회ㆍ진행 따위를 지시하는 장치...”라고 해 봐야 돌아오는 건 졸음 유발자, 고효율 수면제라는 뒷담화 밖에 없겠죠.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과 함께 상상하는 겁니다. “얘들아, 신호등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 또한 그러했습니다.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대화하듯 상상한 거죠. “국가가 뭘까? 국가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국가가 없는 상상 속의 세상. ‘그들’은 그것을 타고난 그대로의 상태 즉, ‘자연상태’라 불렀습니다. 사회계약설의 문제 설정입니다. 매우 쉽고 단순하죠? 그래서 강력하기도 하고요. 제1부는 국가 없는 상태를 상상한 세 사람의 ‘그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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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가 낳은 칠삭둥이, 홉스

먼저 홉스입니다. 그는 국가가 없으면 인간은 짐승, 그 중에서도 ‘늑대’가 된다고 봤습니다. ‘술만 마시면 개가 되는’ 불량 목사 슬하에서 자라서 그랬을까? 그는 하필이면 국가 없는 인간을 ‘개과’에 비유했습니다.

그가 상상한 ‘국가 없는 세상’은 늑대가 된 인간이 서로를 죽을 때까지 물어뜯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였습니다. 사실, ‘투쟁’이라고 흔히 번역하나 라틴어 원문(Bellum omnium contra omnes)에 비추어 ‘전쟁’이 더 정확합니다. 훨씬 공포의 강도가 세죠. 이는 홉스의 무의식과 연관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어머니가 스페인 무적함대가 쳐들어온다는 헛소문에 놀란 나머지 일곱 달 만에 낳은 칠삭둥이가 홉스니까요.

흔히 홉스의 인간관을 ‘성악설’ 혹은 ‘이기적 인간’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적절치 않습니다. 교과서에서 반드시 수정해야 할 부분입니다. ‘악evil’ 또는 ‘이기심selfishness’라는 표현을 홉스 본인이 쓴 적도 없을 뿐더러, 그러한 표현은 윤리적 가치 판단을 함축하기 때문이죠. 사실 판단과 가치 판단을 구분하는 것은 과학의 기본입니다.

그보다는 ‘자기보존’, ‘자기이익’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데요. 영국 경험주의자들이 편리함(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니까) 때문에 애정하는 이 표현이 차라리 훨씬 가치중립적입니다. 어쨌거나, 늑대처럼 서로 물어뜯는 인간의 잔인한 본성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는 절대왕정을 옹호하게 됩니다. ‘개과’는 서열을 중시하는 동물이니 서로 물어뜯다 다 같이 죽지 않으려면 ‘짱 먹는 한 마리’에게 모두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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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사랑한 나르시스, 루소

다음은 루소입니다. 시대를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루소 또한 국가 없는 세상을 상상했지만 홉스와는 정반대로 ‘사랑으로 가득한 세상’을 그려냈습니다. 낭만적이죠? 그리고 그런 세상 속의 인간을 ‘자신에 대한 사랑amour de soi(아무~흐 드 쑤아~ 라팡씨~ 보고 있나?^^)’라는 말로 묘사했구요.

스스로를 사랑하는 존재들이 모여 사는, 사랑으로 가득한 세상... 루소에게 사랑,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은 운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낳고 열흘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내를 지극히 사랑한 루소의 아버지는 ‘아들 얼굴만 보면 떠난 아내의 얼굴이 떠올라’ 그를 방치하다시피 했습니다. 사랑 때문에 오히려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은 루소... 루소에겐 자신을 사랑할, 아니 사랑해야할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 또한 죽었기에, 그 이중적 죽음을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보답해야 했던 겁니다.

하지만 루소는 자신에 대한 사랑과 자기애를 구분했습니다.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는’ 사유재산 제도의 출현으로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왜곡, 타락한 형태가 자기애amour propre(아무~흐 프호프흐~ 라팡씨~ 보고 있지?^^)라고 본 것입니다. (따라서 루소의 자기애는 ‘이기심’이라 번역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성의 회복을 통해 이기심을 극복하고 나아가 자신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돌아가게 돕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 생각했고, 공동의 목적에 대한 합의consensus를 통해 개개인의 특수한 의지를 구성원 전체의 일반적인 의지로 승화시키는 것이 국가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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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는 없지만 은근한 매력남, 로크

다음은 로크. 국가 없는 세상을 꿈꾸었던 3대 몽상가들 중, 시대적으로는 홉스와 루소 사이에 배치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로크를 맨 마지막에 다루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가장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숨참 주의) 그는 평범한 집안에 태어나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학문에는 관심이 많아 두루 책을 섭렵하고 당대의 학자들과 교류하다 팔자에 없는 의사가 되어 ‘화농성 종양’(a.k.a 뾰루지. 심했는지 엄살인지 몸져 누울 정도였다고는 하네요^^;;;)을 치료해 준 인연으로 어느 귀족의 수하에 들어갔지만 정작 그 귀족이 혁명에 참여할 무렵에는 시골에 가 있다가 혁명이 실패하자 별로 한 일도 없으면서 괜히 쫄아서는 다른 나라로 피신해서... (지루하시죠? 저두요. 그만 할게요;;;)

홉스나 루소에 비하면(그리고 명예혁명 기라는 시대 상황까지 감안하면) 꽤나 재미없는(?) 삶을 살았던 로크. 그 또한 ‘국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대답이 가관입니다. ‘국가가 없어진다고 별 일이야 있겠어? 적당히 평온하고 적당히 불안하고 각자 깜냥대로 살겠지...’ 참 쉽죠?

그가 생각한 인간은 한편으로는 신의 피조물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존재였습니다. 지금 듣기에도 그러하지만 기독교가 지배했던 당시로서도 지극히 상식적인(=재미없는) 주장이었죠. ‘각자 자유잖아~ 착하게 살수도 있고, 나쁘게 살 수도 있고, 착했다가 나빠질 수도 있고, 나빴다가 착해질 수도 있는 거지, 안 그래?’

아니,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거 같기도... 그런데 로크 선생님, 님 말이 맞다면 말이죵. 국가는 왜 생긴 겁니꽈아아아~!

“왜냐구? 불편하니까.”
“네? 뭐라구요?”
“불편하니까~~ 생각해보라구. 헤르메스 씨가 좋아하는 야구를 생각해봐. 두 팀이 경기장에 모였어. 야구하려고 모였지? 그게 인간을 창조한 신의 뜻이야. 우리는 야구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겨! 근데 말야. 시합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시합을 즐기는 고매한 분들도 계시지만, 승부에 집착하는 놈, 쓸데없이 흥분하는 놈, 오버하는 놈, 대~충 하는 놈 별별 놈들이 다 있지 않아?”
“흠, 그건 그렇긴 한데...”
“그니까~ 그게 피곤한 거라고, 괜히 스트라익인데 볼이라고 우기고, 지가 잘못해 놓고 방망이 집어던지고...”
“에이, 로크 선생님도... 언제적 이야기를... 요즘 사회인 야구 그렇게 안 해요. 그러다 싸움 나게? 돈 좀 들어도 심판 불러다 놓고 한다구요.”
“그치? 그 심판이 국가야...”
“으응?!!”

어? 그게 국가였어? 야구 심판 같은 게? 대화를 나눠보니 이 양반, 은근히 매력 있네요.


제1부는 여기까지입니다. 2부는 집필을 마치고 퇴고 중입니다. 손목 상태가 안좋아서 작업이 더디네요. 마치는대로 올려드리겠습니다~ 보팅, 댓글, 리스팀, 팔로우 등 여러분의 반응은 무엇이든 헤르메스의 날갯짓을 더 힘차게 만듭니다. 헤르메스의 보람은 더 많은 사람들과의 나눔이니까요.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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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eversloth 님의 스팀파워 지원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대역폭 제한으로 힘겨워 하는 뉴비에게 산타 할아버지처럼 몰래 스팀파워를 지원해 주고 가신@eversloth 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로 보답하고 얼른 돌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관련글: 오늘 산타 할아버지께서 찾아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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