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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한 일기] 03 자아의 신화, 죽음의 충동 (feat.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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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gom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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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가 아니다. 글은 내가 쓰는 게 아니다. 또한 내가 쓰고 싶다고 항상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영감이라고 부르는 나도 제어할 수 없는 내 마음 속 무언가 (결국 그것 또한 내가 만들어낸 것 일지는 모르나) 나타나고 싶다고 신호를 보내면 그게 어느 방향으로 어떤 내용일지도 모른 채 그저 그가 원하는 대로 적어내려 갈 뿐이다.

내가 꼭 적어 내려가야 할 글 같은 건 없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가? 전해야 할 메시지 같은 건 없다. 글로 생계를 이어가고 싶은 간절한 소망 같은 건 없다. 그러나 나는 다만 나의 모든 걸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되도록이면 그 글에 내가 그리고 나의 삶이 담겨있길 바란다. 그 글을 모두 읽은 누군가가 나를 만나도 이질감이 없기를 바란다. 아니 나만큼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 만큼 내가 녹아 든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글과 내 삶이 일치되길 바랐다.

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길 바라고 끝도 없이 기다리는 여정일지 모른다. 어쩌면 시간이 지난 후 내가 나를 잊었을 때 나를 잃지 않도록 기억하기 위한 단서의 파편을 생성하고 있는 거다. 그저 나는 끊임없는 자기 고백을 늘어놓는다. 나 이외에는 아무 것도 담기지 못한 글. 아무짝에 도움이 안 되는 그럴 글을 써내려 갈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자아의 신화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 때 세상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길 간절하게 바랐고 그래서 외로운 존재가 되는 모든 선택을 했다. 20살 때 우연히 간 철학카페에서 역술가는 말했다. ‘그대의 삶은 외롭다고. 언제나 사람을 곁에 두고 사람을 많이 만나라고.’ 그 말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조언을 따르지 않았다.

나는 고립되고 항상 혼자 남았다. 그게 내게 작은 고통을 늘 주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통은 늘 내게 위안을 주었다. 그 작은 고통으로 인해 큰 고통은 내게 오지 않을 것 같은 묘한 안도감이 생겼다. 그렇게 원하는 걸 갖게 되고 나서야 어리석은 인간이 그렇듯이 나는 후회했다. 나는 외롭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시 평범한 삶을 바랐고 내가 생각하는 가장 평범한 삶을 이룩하기 위해 애썼다. 나는 삶의 안정을 바랐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나를 기록할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이미 한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다는 걸 알았다면 그 모든 어리석은 고통도 노력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어느 날 다시 기록이 하고 싶었다. 오랜 시간 인정하지 않았지만 세상 누구보다도 나의 흔적을 남기고 표현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었다. 여기 지금 내가 살아 있다고 알아 달라고 마구 소리를 쳐 댔다. 그런 내가 부끄러워 모호하고 어정쩡한 방식으로 말하려 했고 그 버릇을 아직 고치지 못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몇 살 때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만났던가. 18 혹은 19살이었을 것이다. 집을 나가기 전에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한 기억이 있다. 선생님을 최근 무슨 책을 읽고 있냐고 물었고 나는 ‘파울로 코엘료’의 ‘악마와 미스프랭’을 읽고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파울로 코엘료’를 좋아했고 그의 책을 모았다. 그러니 이미 그땐 연금술사를 읽었을 것이다. 나는 그 책에 꽤나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11분’이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만큼은 아니었다. 그 책은 내가 파울로 코엘료를 좋아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오래도록 내 삶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책의 줄거리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과 감정으로 책을 읽어 내려갔는지도 전혀 모른다.

지난 주 부모님 집에 갔다. 창고에는 여행을 가기 전 꽤 소중했지만 5년 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도서 컬렉션이 먼지와 곰팡이와 함께 잠들어 있었다.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 나는 남자친구가 도와주는 김에 다시 가져가야 할 책, 중고로 내다 팔 수 있을 것 같은 책을 분류했다. 방치된 기간에 비해 책 상태는 꽤나 멀쩡했다. 신기하게도 내가 정말로 좋아하고 다시 읽고 싶던 책들의 상태는 하나같이 멀쩡했다. 집으로 그 책을 돌아와 먼지를 털고 햇볕에 여러 날 말려 두었다. 그 중 ‘연금술사’는 두 권이나 있었다. 한 권은 내가 샀고 한 권은 누가 내게 선물로 줬다. 나는 그 책을 팔려고 했지만 중고서점은 받아주지 않았다. 나는 두 달 전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팟캐스트에 출연해 ‘연금술사’에 대해 말했던 걸 기억한다. (여담이지만 그 작가는 산티아고와 완벽히 같다) 나는 오늘 책장을 다시 열어 정성 들여 그 책을 읽어 내려갔다.


연금술사는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19살 읽었을 때 보다 나는 책이 말하는 의미를 좀 더 마음 깊이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 담겨있는 이야기가 모든 이에게 진실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에겐 겪어온 삶의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마 어렸을 적 이 책은 그저 이건 단순히 꿈을 이루는 이야기 정도로 이해했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유명한 구절에 담겨있는 것처럼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그 말도 틀리진 않지만 연금술사는 삶의 태도에 대해 말한다. 그저 그런 삶이 아니라 자신이 충만한 삶을 살아내고 싶다면 어떤 과정들이 기다리고 있고 어떤 마음으로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내야 할 지.


주인공 산티아고는 특별한 사람이다. 그는 자아의 신화를 이루려고 삶을 실행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점만큼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도 신경 쓰겠지만, 그는 자신이 원하는 걸 명확히 알고 실행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자이다. 그리고 그의 양은 현실과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들은 크게 불만이 없다는 점에서 불만만 품고 부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어떤 면에서 낫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삶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누군가의 손에 달려있다.

’만일 어느 순간 내가 괴물로 변해서 자기들을 차례로 죽여버린다 해도, 양들은 자기 친구들이 거의 다 죽고 난 후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차릴 거야. 그건 다 내게만 의지해 본능에 따라 사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지. 내가 자기들을 먹여주니까.’ - 26page

산티아고는 신부가 되려고 신학교에 다니다가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다는 꿈이 생긴다. 그 꿈을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양치기가 되는 것 뿐이다. 그의 소망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얘야. 세상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지나간단다. 그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찾아서 오지.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똑같은 사람으로 남아 있을 뿐이야. ”-27page

소년은 아버지의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세상을 떠돌고 싶어한다는 걸. 물과 음식, 그리고 밤마다 몸을 누일 수 있는 안락한 공간 때문에 가슴속에 묻어버려야 했던, 그러나 수십 년 세월에도 한결같이 남아 있는 그 마음을.

그의 아버지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이 모두 진실도 아니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아무리 길고 먼 여행을 갔다 왔어도 그 여행이 자신의 삶을 바꿔버리는 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어느 날은 내가 여행을 갔다왔었는지 의심이 들만큼 변화된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새로움을 경험한 대가는 크다. 내가 가지고 있던 안락함과 안정은 사라졌고 어떤 사람들은 그 이후에도 오래도록 그 편안함을 다시 얻지 못한다. 내가 그랬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행이 아무 의미도 없던 건 아니다. 나는 절대 똑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 여행에는 수 많은 표지가 있었고 상상하지 못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아마 그때 내가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오래도록 내 마음 속에 후회와 미련이 남았으리라. 난 여행을 떠나면서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그냥 다 필요없이 이 생각만 했어. 이 여행을 다녀온 나, 이 여행을 가지 않은 나. 둘 중에 어떤 인생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 그래서 여행을 가기로 했어.”


”이유야 많지.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자네가 자아의 신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걸세. 그것은 자네가 항상 이루기를 소망해오던 바로 그것일세. 우리들 각자는 젊음의 초입에서 자신의 자아의 신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지.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여.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그 신화의 실현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해주지. 그것은 나쁘게 느껴지는 기운이지. 하지만 사실은 바로 그 기운이 자아의 신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네. 자네의 정신과 의지를 단련시켜주지.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47page

그들은 의지가지없이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양치기와 양의 한몸 같은 관계를 알지 못했다.(중략) 그가 양들을 떠난다면 양들은 견디지 못할 것이었다.-54page

왕과의 대면 이후 단단하고 굳건했던 그의 꿈에도 불구하고 산티아고 역시 흔들린다. 자꾸만 불만이 생기고 자꾸만 불안해진다. 자꾸만 핑계거리가 늘어나고 자꾸만 부정하고 싶다. 내가 속은 거면 어쩌지. 나는 바보인가? 그 말을 그리 쉽게 믿다니 현혹 당한 것만 같다. 사기 당한 것만 같다. 그러나 그는 알게 된다. 그도 바람처럼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를 붙잡는 건 다름 아닌 두려움인 걸.

친구를 사귀는 일은 여행의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만난 친구들과 며칠씩 함께 지낼 필요는 없었다. 항상 똑 같은 사람들하고만 있으면 그들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해버린다. 그렇게 되고 나면, 그들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려 든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이 바라는 대로 바뀌지 않으면 불만스러워한다. (중략)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40page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좋은 일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똑같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55page

산티아고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바람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자신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떠나지 못하게 그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자신말고는. -56page

그는 낯선 땅에 도착한다. 그리고 우주가 그의 소망을 이루도록 도와준다는 그 말을 너무 믿고 방심한 탓에 첫 날 전 재산을 날린다. 그리고 방어적인 다짐을 한다. 보통은 그토록 오래 살겠지만 그는 특별한 사람이기에 이내 세상에 대한 균형을 다시 찾는다.

난 이제부터 혹독해질 거야. (중략) 내가 가진 아주 작은 것이라도 움켜쥐고 절대로 놓지 않겠어. 세상 전체를 끌어안기에는 나는 너무 왜소하니까.’ -72page

이 세상은 도둑에게 가진 것을 몽땅 털린 불행한 피해자의 눈으로도 볼 수 있지만,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가의 눈으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76page



그는 크리스털 상점에서 자신의 선택으로 일하게 된다. 타인의 허락은 필요없다. 그냥 그가 결정하면 되는 일이다. 다만 꿈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다시 양에게 돌아가고 다시 삶을 되찾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로 그는 크리스털 상점에서 탁월하게 일하게 된다. 상점 주인은 그를 알아보았지만 그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꿈이 있었지만 그 꿈을 실현하길 두려워하고 변화를 두려워하고 자신의 그릇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내 삶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바로 메카이기 때문이지. (중략) 초라한 식당에서 먹는 점심과 저녁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바로 메카에서 나온다네. 난 내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 (중략) 다만 내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커다란 절망이 두려워 그냥 꿈으로 간직하고 있기로 한 거지.” -94page

“마크툽”
모든 것은 쓰여 있다. 모든 것은 신의 뜻 대로.

그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아직도 어느 정도 의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결정이란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116page

확고한 믿음이 항상 유지되지 않는다. 언제나 불안하고 완전히 자신을 믿을 수 없다. 나도 그러했다. 그도 그러했구나. 그리고 길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자신의 위대함을 모른 채 가르침을 주는 낙타몰이꾼 같은 사람들.

난 지금 과거를 사는 것도 미래를 사는 것도 아니니까. 내게 오직 현재만이 있고, 현재만이 내 유일한 관심거리요. 만약 당신이 영원히 현재에 머무를 수만 있다면 당신은 진정 행복한 사람일 게요. 생명은 성대한 잔치며 크나큰 축제요. 생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오직 이 순간에만 영원하기 때문이오. -144page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조금 슬퍼졌다. 나의 꿈은 무엇일까. 나의 자아의 신화란 무엇일까, 그건 젊은의 초입에서 발견된다는 데 나는 그런 게 없는 사람이 아닐까. 아니 내가 부족했던 건 나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좋은 일이 와도 좋은 지 몰랐고 좋은 일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꿈을 이루는 사람은 늘 자기확신에 가득 차 있고 어려움이 와도 흔들림과 의심이 없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무언가를 할 때 의심이 들고 시험이 오면 절망하고 부정했다. 나의 선택을. 나는 고통받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늘 한 고비를 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내가 때때로 불평하는 건, 내가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야.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지. 인간의 마음은 정작 가장 큰 꿈들이 이루어지는 걸 두려워해. 자기는 그걸 이룰 자격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이룰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사랑이나 잘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던 순간들, 어쩌면 발견할 수도 있었는데 영원히 모래 속에 묻혀버린 보물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두려워서 죽을 지경이야. 왜냐하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아주 고통받을 테니까. 212page

”어째서 마음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꿈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는 거죠?”
“그럴 경우,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마음이기 때문이지. 마음은 고통받는 걸 좋아하지 않네.”214page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네.”

산티아고는 자기 고향의 오랜 속담 하나를 떠올렸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바로 해 뜨기 직전’이라는. 216page


나는 셈에 약하고 현실적이지 못하고 어떤 면에서 참으로 형편없는 인간이다. 그러나 나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충동적이고 변덕스럽다고 자신을 격하하곤 하지만 무언가 정말 원하는 걸 발견했을 때 열정과 집중력은 놀라울 정도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대한 평가에는 가슴이 쓰려 흔들리지만 대체로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 자신에게 가장 좋은 걸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어쩌면 이대로 영원히 변하지 못한 채 살아가다 끝날 수도 있다.

나는 항상 두려웠다. 나의 마음에 사로잡힌 상념을 걷어낼 수 없고 고통받을까 두려웠다. 어쩌면 내가 한 발을 내딛지 못했기에 나는 내가 원하던 방랑하는 삶을 살지 않기로 결정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가족이라는 핑계거리를 만들기로 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안주하고 싶었다.

언제나 조금 내면을 들여다보면 나는 죽음의 충동에 시달린다. 별 거 없고 하찮은 인생이지만 제대로 살 지 못하는 나를 바라보면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더 의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고통이나 괴로움에서 나오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좀 더 제대로 충만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의 고백에 가깝다. 그럴 땐 누구보다도 욕심이 많다 싶다. 같잖은 자존심과 기대가 하늘만큼 높구나. 나는 나를 내려놓지 못했구나.



문득 나는 내 속에 있는 모든 말을 어떤 한 사람에게 전부 할 수 없다는 걸 자각한다. 그래서 아마도 가장 나의 많은 것을 지속적으로 말한 나의 베프에게도 나의 한심하고 형편없는 부분을 전부 늘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종종 나에 대한 그녀의 평가에 놀랄 때가 있었다. 나는 잘해야 산티아고의 ‘양’이지만 나의 베프는 내가 ‘산티아고’라고 말해주곤 했다.

그녀의 말처럼 때로는 ‘내가 산티아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바람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무거운 의문이 가슴을 훑는다. 이 모든 삶에 내가 얻은 한 가지 교훈은 내 마음이다. 나는 내 마음을 평화롭고 고요하게 이해해줘야 뭐 라도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 모든 산티아고에게 마음을 쓰고 힘이 닿는 대로 도와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마 내가 알레에게 끌렸고 그 여행을 거기서 마무리 지었던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모든 건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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